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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고미영 오은선 총정리

by 모든 정보 제공 2023. 2. 24.

1. 고미영

한국의 등반가. 스포츠클라이밍의 1인자로 활약하다가 2006년부터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을 등정하기 시작하여 11좌를 등정한 등반가입니다.

하서초등학교, 하서중학교를 거쳐 인천인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농림부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2003년 청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 2008년 졸업하였습니다.

1991년 코오롱등산학교를 통해 스포츠클라이밍에 입문했습니다. 1995~2003년 전국등반경기대회 9연패, 1997~2003년 아시안챔피언십 6회우승 등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8년 프랑스 니스국제오픈 1위, 1999년 영국 셰필드 국제오픈 볼더링 1위, 2000년 월드컵 종합랭킹 6위, 2001년 에델바이스 배 빙벽등반대회 난이도경기 1위, 2002년 아이스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 4위, 2003년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종합랭킹 5위, 스포츠 클라이밍 월드컵 8위 등 스포츠클라이밍 부문에서 많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7년부터 공무원을 그만두고 전문 산악인으로 활동했으며, 2005년 파키스탄의 드리피카 산(6,047m) 등정을 계기로 고산 등반가로 진로를 바꿔 2006년부터 히말라야 8,000m급의 14좌 완등을 목표로 등반하였습니다.

2006년 10월 초오유(8,201m)를 등정했고, 2007년에는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와 브로드피크(8,057m), 시샤팡마(8,012m) 봉에 올라 여성 등반가 최초로 한 해 3개봉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2008년 로체(8,516m)와 K2(8,611m), 마나슬루(8,163m) 3개봉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이 외에 남아메리카 최고봉 아콩카과 산(6,959m),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산(5,895m)에도 올라 아시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을 포함해 3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2009년 5월 1일 마칼루(8,463m), 5월 18일 칸첸중가(8,586m), 6월 9일 다울라기리(8,167m)에 올라 세계 최초로 한 시즌(봄) 8,000m 3개봉 연속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다울라기리는 무산소 등정했습니다.

같은 해 7월 10일 낭가파르바트(8,126m) 등정에 성공하면서 히말라야 8,000m 이상 급 총 11좌에 올랐으나, 하산 도중 해발 6200m 지점 칼날능선에서 실족하여 사망하였습니다.

2002년 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 산악상(등반 부문)을 받았고, 2009년 한국산악회 황금피켈상, 체육훈장 맹호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사후에 그의 이름을 딴 '고미영배 청소년 스포츠클라이밍 대회'가 창설되었습니다.

2. 오은선

산악인. 아버지 오수만과 어머니 최순내 사이에서 1남2녀 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강원도에서 살다가 이후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암벽에 관심이 많아서 수원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산악부에 가입했고, 첫 암벽인 인수봉 A코스를 등반한 이후 산을 오르는 데 청년기의 대부분을 바쳤습니다.

25세 때인 1991년 가을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에 선발돼 1년여 맹훈련을 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수원대학교 전산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과학교육원에 전산직 공무원으로 취직해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1993년 에베레스트 원정 직전엔 7급 승진 케이스였습니다.

그러나 미련 없이 직장을 버리고 에베레스트를 선택하여, 1년 동안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을 잇는 종주 산행과 겨울 설악산과 한라산에서 장기 훈련을 했습니다.

첫 원정이었던 에베레스트에서 비록 등정은 하지 못했으나 3캠프(7,300m)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때만 해도 체력이 뒤처져 정상 공격조에서는 제외됐고, 선배 3명(지현옥, 김순주, 최오순)이 등정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후 그녀가 처음으로 8,000m 거봉 정상에 오른 건 1997년 박영석이 이끄는 대학산악연맹 원정대를 따라 나섰던 가셔브룸2봉(8,035m)이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히말라야를 등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학습지 교사와 스파게티 가게를 운영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1999년 다시 원정을 가게 되어 휴가를 내려 했으나 회사에서 장기간의 휴가를 허락해주지 않자 결국 학습지 교사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99년 브로드피크(8,047m)와 마칼루(8,463m)를 등반했습니다. 2001년에는 박영석이 이끄는 14좌 원정에 홍일점으로 동행했으나, 이 세 등반에서 한 사람씩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고, 그녀는 결국 등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히말라야 고산 등반에서 7대륙 최고봉 도전이란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2002년 유럽 엘브루스(5,642m), 2003년 남미 아콩카구아(6,959m)와 북미 매킨리(6,194m), 2004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963m), 호주 코지오스코(2,228m), 남극 빈슨매시프(4,897m), 아시아 에베레스트(8,848m)를 차례로 등정하며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7대륙 최고봉은 에베레스트를 제외하면 혼자서도 등정할 수 있는 5,000~6,000m급 봉우리들입니다. 이 중에서도 에베레스트 등정은 14좌를 성공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되었습니다.

2005년 초 그녀는 스키를 타다 오른쪽 다리가 복합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1년간 쉬면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첫 단계로 2006년 8월 말 시샤팡마(8,046m)와 초오유(8,201m) 원정을 추진했는데, 혼자서 셰르파 2명과 나선 이 원정에서 시샤팡마만 오르고 초오유는 실패했습니다.

그 해 겨울 대학산악연맹 후배들과 아마다블람(6,856m) 등정을 마친 그녀는 셰르파도 없이 후배인 김선애와 단둘이 초오유를 올랐습니다.

이후 2007년 7월 K2(8,611m) 등정길에 올라 등반 개시 18일 만에 정상을 밟았습니다. 2008년에는 마칼루(8,463m), 로체(8,516m), 브로드피크(8,047m), 마나슬루(8,163m)까지 무려 4개의 거봉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칸첸중가(8,586m), 다울라기리(8,167m), 낭가파르밧(8,126m), 가셔브룸1봉(8,080m)을 오른 데 이어 2010년 4월 27일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 오름으로써, 그녀는 1997년 가셔브룸2봉에 오른 이후 13년 만에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을 기록했습니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이며, 남녀를 통틀어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 이후 세계 20번째입니다.

하지만 2009년의 칸첸중가 무산소 등정에 대해서는 오은선이 남긴 등정의 기록과 자료가 불충분하여 해외 산악인과 대한산악연맹 등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 등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2010년 8월 대한산악연맹에서 칸첸중가 등정을 경험한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의혹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고, 여러 정황으로 보아 정상 등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은선은 이후 특별한 고산 등반은 하지 않았습니다.

1993년 체육포장, 2004년 한국대학산악연맹 올해의 산악인상, 2005년 대한산악연맹 산악상 고산 등반부문상, 미래의 여성지도자상, 2007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1호상, 2009년 서울특별시산악연맹 2008 우수 산악인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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