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적인 교과지식을 제공하는 준비교육

기초적인 교과지식을 제공하는 준비교육

초등교육을 이해하는 방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강력한 것은 초등교육을 학생들이 장차 교과 공부를 해 나가는 데에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과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교육으로 규정하는 생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이라는 구분 방식 자체가 교과지식의 수준을 준거로 하여 이루어져 있다. 이 점에서 초등교육은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을 받는 데에 필요한 기초적인 사항들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교육의 형태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초등교육은 초등의 또는 초급의 교과지식을 제공함으로써 그 이후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습자들을 준비시키는 교육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것이면서도 초등교육에 예기치 못한 불상사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먼저 초등교육을 중등교육을 위한 준비교육으로 보게 되면 초등교육은 어떠한 독자성이나 자율성도 인정받기가 어렵다. 을 위한 준비란 추구해야 할 목적이나 가치, 그러한 추구의 행위를 이끄는 실제적인 방향성 등이 '~'에 있다는 의미이며 준비란 말 그대로 그 목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적이거나 도구적인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초등교육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활동 즉 내재적 가치를 지니는 활동이 아니라 그것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외부에 지다는 수단적 활동이 되고 만다. 더 나아가 초등교육이 수준 높은 교과 공부를 위한 초급의 또는 초등의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라고 하면 그러한 교육은 바로 그 교과지식의 측면에서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과 비교하여 중요성이나 의의가 높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 점에서 초등교사들의 교과에 대한 전문성 부족을 문제 삼는 발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 초등교육은 초보적인 지식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지식을 전수하는 것으로서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는 식으로 미사여구를 동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동의 인지적인 구조는 청소년들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러한 인지구조를 성장시키기 위한 지식은 다른 단계의 인지구조를 성장시키기 위한 지식과는 단선적인 비교가 불가능한 불가 공약성을 지닌다고 하는 식으로 다른 방식의 정당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가 공약성을 지닌다고는 하더라도 발생적인 계열을 형성하는 이전의 지식(초등교육을 통하여 전수되는 지식)은 인식론적으로 볼 때 이후의 지식(중등교육에서 전수되는 지식)보다 위계상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난관에 가로막혀 있다. 초등교육은 아닌 게 아니라 초보적인 지식을 전수하는 준비 단계의 교육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초등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입지를 어렵게 한다거나 또는 초등교육의 전문성과 독자성을 훼손한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초등교육의 난처함은 교육을 교과 공부를 위한 활동으로 규정하는 사고방식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초등교육은 중등교육을 위한 준비교육이라고 하지만 다시 그 중등교육은 고등교육을 위한 준비교육이다. 그리고 대학 이상에서 전개되는 고등교육은 성격상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 활동을 수행하는 장이다. 따라서 이러한 생각은 교육을 학문을 위한 도구적 활동으로 보는 사고를 전제하고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 활동은 성격상 가장 최신의 가장 수준이 높은 지식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의 지배를 받고 있다. 학문적인 기준에서 보면 가장 수준 높은 최신의 지식이 최우선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교육이 학문을 위한 것이라고 보면 초등, 중등, 고등의 각급 교육은 그러한 학문적인 기준에 따라 가치와 우열이 평가될 수밖에 없다.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이 학문적인 가치를 우선시하면서 최선의 이론을 창출하는 활동에 매진하거나 일류의 학자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애쓰는 것은 정당한 소임일 수도 있다. 대학은 어떻게 본다고 하더라도 진리의 전당이며 진리라는 가치에 현신하는 자들을 기르는 장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고등교육이 진리의 추구라는 지향점을 지닌다고 해서 고등교육을 제외한 다른 형태의 교육들도 과연 학문 활동을 위한 준비의 의미를 지녀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학문적인 기준에 따라서 그 구체적인 됨됨이가 결정되고 의의가 평가되어야 하는 것인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