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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과 중고등교육
초등교육의 개념이 재정립되고 그럼으로써 초등교육의 본질적인 모습이 어느 정도라도 드러났다면 초등교육은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과 구분되는 차별성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러한 구분이 여전히 분명하지 못하다는 불만이다. 이것은 초등교육의 본래적인 모습에 접근하려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사소한 불만이 아니다. 우리는 가능한 만큼 이를 해소시켜 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분명히 해두어야 하는 것은 초등교육을 중등교육 또는 고등교육과 차별화된 모습으로 묘사하려면, 먼저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본질적인 모습도 초등교육의 그것과 함께 어느 정도라도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이러한 각급의 교육들을 비교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 역시 그 본래적인 모습이 분명히 규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기에 따라서는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초등교육보다도 더 심각한 개념적 혼란과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필요한 만큼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역할을 규정하면서 그것이 우리가 도달한 초등교육의 본질적인 모습과 구분되는 것임을 보이고자 한다. 다만 그것은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묘사나 세밀한 설명에 근거한 것일 수는 없다는 점을 미리 밝혀둘 필요가 있다.
먼저 고등교육은 어떠한 일을 하는가? 그것도 교육인 이상, 아마도 고등교육 역시 우리가 도달한 결론 가운데 하나, 즉 교육은 학생들에게 주체적인 학습의 역량을 길러주는 일을 한다는 당위(當爲)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일차적인 관심사가 반드시 주체적인 학습의 역량을 습득하도록 학생들을 돌보는 데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고등교육의 주된 역할은 최신의 이론을 창출한다거나 고등교육에 투자하는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한다거나 하는 데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즉, 고등교육의 지향점은 최신의 지식과 기능을 생산하고, 이것으로 무장한 전문인을 기르는 데에 있는 것이다. 고등교육의 경우 주체적인 학습의 역량은 고등교육 이전 단계의 교육을 통하여 이미 학생들이 습득하고 있을 것으로 전제된다. 만약 최신의 지식과 기능으로 무장한 전문인을 양성하는 일과 주체적인 학습의 역량을 길러주는 일이 충돌하고 갈등할 경우, 고등교육의 장면에서는 후자가 희생되고 전자가 우선권을 가질 수도 있다. 고등교육의 경우에는 주체적인 학습의 역량을 발휘하여 내실 있는 학습을 수행한다는 과정적 충실성보다는 관련 분야에서 높은 수준에 오른다는 결과상의 성취가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등교육의 모습은 분명 초등교육의 그것과는 같지가 않다.
초등교육의 독자성 문제는 고등교육보다는 주로 중등교육과의 관련 속에서 제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초등교육은 중등교육과의 차별화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등교육은 어떠한일을 하는가? 중등교육은 성격상 주로 고등교육을 준비하는 단계의교육이라고 이해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은 학생들이 장차 그들이전문인으로 종사하기를 희망하는 분야로 진학하여 고등교육을 받는데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전수하는 일을 주된 책무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등교육을 통하여 전수되는 지식이나 기능은 고등교육의단계에서 접하게 될 지식이나 기능을 예비하는 것으로 선정되고 조직될 수가 있다.
중등교육에서 다루는 지식이나 기능이 고등교육의 그것을 예비한다는 말은 인식론적으로 볼 때, 후자가 논리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먼저 습득되어야 할 것들이 전자의 구체적인 내용을 형성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고등교육이 다루는 A라는 최신의 지식체계가 a, b, c라는 하위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고, c라는 요소는 'a와b, 그리고 그 밖의 것들'로 이루어지며, b는 'a와 그 밖의 것들'로 형성된다고 할 때, A를 제대로 전수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a, b, c라는 지식의 요소들을 a → a+b → a+b+c의 순서로 다루지 않으면안 된다. 중등교육은 고등교육에서 다루어야 할 지식의 내용을 형성하는 들 가운데 먼저 습득될 필요가 있는 것들을 학생들의 능력과 재학년한을 중심으로 선정하여 전수한다. 이처럼 중등교육의 교과를 형성하는 내용들은 고등교육과의 관련 속에서 그 선정과 조직이결정된다. 고등교육은 교과내용의 선정과 조직에 대해서만 중등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중등교육에서 다루는 내용들도 고등교육에서 다루어야 할 지식과 기능의 하위요소인 이상 그것의 평가역시도 고등교육이 취하고 있는 준거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달리말하면, 중등교육의 평가준거는 학습과정의 충실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결과상의 성취수준을 우선시 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중등교육은 방금 위에서 설명한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한 마디로 중동교육은철저하게 고등교육에 대한 준비교육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등교육을 반드시 고등교육의 준비교육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보는 것은 어쩌면 중등교육에 좋지 않은 해를 끼칠 수가있다. 고등교육은 전문인을 양성하는 교육으로서 최신의, 그리고 최고 수준의 지식과 기능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성취하는 데에 관심을보이기 마련이지만, 중등교육은 성격상 반드시 전문인을 예비하는 일만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중등교육을 이수한 뒤에 고등교육을 받기 위하여 대학 등으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중등교육 단계에서 제도적인 교육을 마무리해야 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 경우 중등교육이 고등교육의 준비 단계로 운영되는 것은 고등교육에 들어서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부당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만약 중등교육에서 전수되는 지식이 성격상 고등교육을 통하여 접하게 될 지식과 통합되거나연계될 경우에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면, 이는 중등교육의 단계에서제도교육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 될 수 없다. 또한중등교육이 차용하고 있는 결과상의 성취라는 기준, 다분히 학문적인성취를 감안하고 마련된 기준은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의 교육적인 성장을 평가하는 것일 수도 없다.
여기서 중등교육의 고유한 긴장 구조가 형성된다. ‘고등교육의 준비단계로서 학문적인 기준에 의한 교과의 선정과 조직의 원리, 교수학습의 방법, 평가의 방식 등을 차용할 것인가, 아니면 고등교육과의관련을 떠나서도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중등교육 그 자체만의 교과 선정과 조직의 원리, 교수-학습의 방법, 평가 방식 등을 마련할 것인가 하는 긴장이 중등교육에 편재 있는 것이다. 교육사를 통해해서 보면, 중등교육을 고등교육의 준비단계 또는 고등교육 원리의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경우, 교과의 가치를 강조하고 교육활동은 교과를 내면화하는 수단적 위치에 있다고 보는 각종의 교육론이 등장한다. 반면 교육과 교과를 분리하여 생각할 경우, 중등교육은 최신의 학문적인 내용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과 연계를 이루는 내용들을 통하여 학생들의 경험이 성장하도록 하는 데에 주의를 집중해야 되며, 경험의 성장을 가져오는 활동 그 자체에 충실해야 된다는 교육론이 등장한다. 전자가 중등교육을 주도할 경우 그것은 성격상 고등교육의 형태에 접근하게 되며, 후자가 중등교육을 지배할 경우 그것은 성격상 초등교육에 가까워진다.
중등교육이 고등교육의 원리를 차용하여 이루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초등교육의 본질적인 모습에 조금 더 가까워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쉽게 대답할 성질의 것이 못 된다. 어쩌면 그것은 고등교육과 초등교육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교육의 형태가 팽팽한 긴장을 형성하는 가운데 매순간 중등교육에 가해지는 다양한 압력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됨됨이를 형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도 중등교육론이 풀어야 할 과제이면서, 동시에 중등교육을 초등교육이나 고등교육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관건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일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지 않고는 중등교육이 자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중등교육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안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점만은 다소간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중등교육이 어떠한 모습을 취하는 것이든지 간에, 초등교육을 통하여 형성된 주체적인 학습의 역량과 그러한 역량을 발휘하는 가운데 확인된 학습자의 가능성과 소질의 방향을 전제로 하여 중등교육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중등교육은 초등교육의 성공을 전제로 하여 교육적인 기준'과 '학문적인 기준' 사이의 균형점을 모색하는 가운데 그 영역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형태는 앞에서도 거론했던 것처럼, 모든 교과를 균등하게 학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학습자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한 '심화교과학습과 교양인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바를 제공하는 '교양교과학습'을 두 축으로 하는 교육이어야 옳다. 이러한 중등교육의 모습은 초등교육의 그것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초등교육은 학문적인 기준에 의하여 구체적인 모습이 결정되는 교육의 형태는 아니며, 다분히 교육적인 기준을 따르면서 그 본질을 실현시켜 나가야 하는 교육의 첫 단계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지금 현재 교육의 원형적인 모습이 살아 숨쉬는 마지막 보루(堡壘)일지도 모른다. 물론 앞으로 중등교육이 고등교육에 대한 (입학준비라는 소임에서 벗어나 초등교육과 유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교육의 원형적인 모습을 함께 구성해 나가도록 하지 않으면 초등교육마저도 다음 단계의 교육을 위한 준비로 전락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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